삼국지 경영학 (23) - 유비 :: 2007.06.03 02:03

유비, 공명에게 모든 것을 맡기다.


마지막 고집 부리다 치명적 패배

후계구도 마련엔 최선의 포석 


  유비의 오나라 정벌은 어차피 무리였다. 국력을 총동원해 5만여 명의 군사를 모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지휘관과 참모가 부족했다. 경험이 풍부한 관우 등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법정이나 방통 같은 뛰어난 참모를 대신할 후계자가 없었다. 촉나라가 변방에 떨어져 있어서 그랬는지 인재 선발 시스템이 잘못됐는지 창업 1세대를 이을 신진기예의 후계세대가 모자랐다. 철두철미 능력주의로 나간 조조보다 인정이 많은 유비는 인재의 세대교체에 신경을 덜 썼는지 모른다. 창업세대가 요직을 꽉 잡고 있으면 아무래도 신진들이 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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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비는 오나라 정벌에 나서면서도 북쪽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위나라에 대한 대비도 해야 했기 때문에 마초·조운·위연 등 백전노장들을 후방에 남겨두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공명이 참전하지 않았다. 공명이 오나라 정벌에 소극적이기도 했지만, 유비가 없는 성도에서 나랏일을 총괄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갈공명에게 일이 너무 집중됐다. 제갈공명이 너무 출중한 탓도 있지만, 유비가 적당히 권력을 나눠 일을 배분시키지 못한 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비는 난세의 통 큰 보스지만 안정기의 뛰어난 경영자 자질에선 조조보다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유비가 가장 본받으려 했던 한고조 유방은 인재를 골고루 잘 썼다. 세 사람의 뛰어난 인재, 즉 소하(蕭何), 장량(張良), 한신(韓信)을 각기 특장(特長)에 맞춰 잘 부렸다. 소하는 승상으로서 나라 안을 빈틈없이 다스리고 군수등을 책임지고 조달해 유방이 전선에서 안심하고 싸울 수 있도록 했다. 장량은 항상 유방 곁에 있으면서 시의적절한 전략과 전술을 내놓았다. 그 위에 진평(陳平)이라는 파격적 참모가 있어 장량의 부족한 점을 보완했다. 한신은 뛰어난 전선지휘관으로 전장에서 많은 군사를 수족같이 부려 유방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유방은 이 세 사람에게 각기 알맞은 역할을 맡기고 대소고처(大所高處)에서 지휘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위대한 CEO의 능력이다. 후에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 나서 창업 공신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데 한신도 숙청 대상이 된다. 한신이 유방에게 잡혀와 연금 상태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유방과 한신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수란 각기 그릇이 있어 거느릴 수 있는 병력이 다르다는 말이 나왔다. 유방이 한신에게 묻는다. "나는 어느 정도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는가",  "한 10만 명쯤 될 것입니다".  "한신 당신은 어느 정도 거느릴 수 있는가",  "저는 신축자재해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면 왜 당신이 나의 수하였고 지금은 나에게 잡혀있는가", "저는 병사를 잘 쓰지만 폐하는 장수를 잘 쓰는 장(將)의 장(將)이기 때문입니다."




  유비도 장(將) 감이지만 천하의 영걸 세 사람을 수족 같이 부린 유방은 못 따라간 것이다. 그래서 유방이 천하를 통일해 한나라를 세운 데 비해 유비는 공명 한 사람에게 너무 의존하다 지방정권으로 끝났는지 모른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도 늘  "경영자도 그릇이 다르다. 상무 그릇이 있고 전무 그릇이 있고 사장 그릇이 있다. 상무 때 잘하다가도 전무, 부사장이 되어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사장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 좋은 사장이 되려면 노력도 필요하지만 타고난 덕성도 갖춰야 한다" 는 말을 늘 했다. 확실히 같은 임원이라도 위로 갈수록 그릇이라는 것이 중요하며 그래서 위대한 경영자는 타고난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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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최후를 맞은 백제성.


  유비가 막 떠나려 할 즈음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동정군(東征軍)의 선봉 노릇을 해야 할 장비가 부하들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장비는 임지에 돌아가 1만여 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강주(江州 : 오늘날의 중경)에서 유비와 합류하기로 했는데 급한 마음에 너무 성질을 부려 부하들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장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으러 갈 때 모든 군사들에게 입힐 흰 군복을 사흘 안으로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실행 불가능한 명령이었다. 부하 장수가 어렵다고 하자 명령 불복종으로 심한 매질을 하면서 기일을 못 대면 때려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부하 장수는 어차피 죽을 바엔 살 궁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해 밤중에 술에 취해 잠든 장비의 머리를 베어 오나라로 도망간다. 평소 장비는 술만 마시면 병사들을 매질하고 심하면 때려죽이는 등 행패가 심했다. 전쟁 때는 몰라질서가 잡히고 나면 모든 것을 법규와 규정에 따라야 하는데 장비에겐 그런 인식이 없었다. 모범적인 조자룡이 항상 조심한 것과는 대비된다. 조자룡은 어느 전쟁에서 고향 사람을 포로로 잡았는데 그가 군법에 능통한 것을 알고 유비에게 청원해 군법무관으로 쓰게 했다. 그러나 오해를 받을까봐 자기 부대에 두지 않고 다른 부대로 보냈다.  그러나 장비는 타고난 성질이 있는 데다 창업공신이라는 것, 황제의 의형제라는 것 등이 겹쳐 다소 마음대로 굴었지 않나 짐작된다.점은 관우도 마찬가지였다. 유비도 장비의 성질을 잘 알아  "너는 부하들을 심하게 매질하면서 가까이 두고 있으니 큰 탈이 날까 걱정된다. 성질을 죽이고 조심하라" 고 여러 번 타일렀다. 그런 개인적인 충고보다 행패가 용납 안 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인정 많은 유비는 그것을 못한 것 같다.



  장비의 죽음 소식이 전해지자 유비는 손권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불
태웠다. 손권 때문에 사랑하는 두 아우가 죽었으니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촉나라에서 오나라 땅이 된 형주로 쳐들어가려면 양자강(長江)을 따라 배로 내려가거나 강 양쪽의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한다. 지금도 중경에서 형주 입구인 의창(宜昌)까지 가려면 중간에 유명한 세 협곡, 즉 삼협(三峽)을 지나야 한다. 강 양쪽엔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산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어 천험의 난관을 이루고 있다. 군데군데 물길이 빨라 오늘날의 현대식 선박으로도 매우 조심해서 가야 한다. 유비군은 일부는 배로, 일부는 산을 넘어 험난한 행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수송 장비가 보잘 것 없는 당시에 5만여 명의 군사가 움직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손권은 유비가 쳐내려 온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다. 유비가 가만히 있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북쪽에 강대한 위나라를 두고 군사를 총동원해 직접 올 줄은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비와 가까운 제갈근(諸葛瑾)을 사절로 보낸다. 유비는 백제성에서 제갈근을 만난다. 제갈근은 먼저 관우의 죽음에 대해 사과를 한다. 관우가 죽은 것은 손권의 참뜻이 아니며 평소 관우와 사이가 나빴던 여몽(呂蒙)이 저지른 일이라고 변명한다. 그러면서 한나라를 찬탈한 역적 조비(曹丕)를 놔두고 오나라에 쳐들어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설득한다. 촉나라와 오나라가 싸우면 위나라만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취한다면서 손권은 촉나라와 잘 지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백 번 옳은 말이었지만 유비는 들을 태세가 아니었다. 손권을 잡아 원수를 갚겠다면서 제갈근을 쫓아 보냈다. 오나라에선 이미 대비를 하고 있었다. 촉과 위 양쪽에서 공격을 받으면 곤란하니 위나라에 외교사절을 보내 화의를 다져 놓고는 젊은 육손(陸遜)을 총사령관으로 발탁해 비상태세에 들어갔다. 이때 손권은 위나라의 신하를 자처했다. 나라의 보위를 위해서 명분에 구애받지 않은 것이다.



  서전에서 유비군은 승리를 거뒀다. 복수심에 불타는 기세도 있어 오나라 방위선을 가볍게 돌파해 형주의 입구인 효정(亭)에 전선사령부를 설치한다. 유비는 스스로 군사엔 자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하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앞장서서 전진했다.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유비는 오나라 손권은 물론 젊은 사령관 육손을 우습게 봤다. 하지만 육손은 육손대로 전략이 있었다. 유비군이 몇 번이나 결전을 유도했으나 응하지 않고 전략적 후퇴를 거듭했다. 전쟁이 길어지자 유비군의 보급선이 길어져 장강 연안 700리에 걸쳐 40여 채의 진영이 늘어서게 됐다. 거기다 긴장감이 풀어지고 자만심이 생긴 것이 더 문제였다. 육손은 촉군을 깊숙이 끌어들여 필살의 일격을 날릴 수 있는 때를 기다린다. 여름이 되자 촉군은 시원한 숲 속으로 진채를 옮기고 군대를 길게 배치해 방어에 취약점을 드러냈다. 육손은 이 허점을 놓치지 않는다. 일제히 화공 공세를 벌이니 유비의 40여 진채가 모두 불길에 휩싸였다. 밤중에 서로 호응할 수가 없어 유비 진영이 유린되고 강 위에 있던 촉나라 배들도 오나라 수군에 의해 전멸했다. 군수물자나 장비도 모두 불탔다. 기습을 당한 유비는 야밤중에 허둥지둥하다 겨우 목숨만 건져 백제성(白帝城)으로 도망쳤다. 유비가 끌고 간 5만여 명의 군사 중 백제성까지 도망쳐 온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장강 북쪽에 있던 북군 사령관 황권도 퇴로가 끊겨 위나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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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이 바로 유명한 이릉(夷陵)대전인데 유비군은 당분간 재기
가 불가능할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유비가 백제성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을 때 육손은 더 나아가지 않고 회군한다. 부하 장수들이 이참에 유비의 숨통을 끊어버리자고 해도 육손은 본국을 오래 비워두면 위나라의 조비가 쳐들어온다면서 서둘러 철군했다. 과연 위나라 조비는 군대를 동원해 놓고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촉, 오 두 나라가 싸우다 지치기를 기다려 일거에 천하통일에 나선다는 전략이었다. 그런 전략을 꿰뚫어 보고 육손이 재빨리 후퇴해 전선을 정비한 것이다. 당시 삼국은 물고 물리는 대치를 하고 있었는데 유비가 오나라와 싸운 것이 전략적 실수였다. 또 전장에서도 유비의 나이 때문인지 자만심 때문인지 적을 깔보다 치명적 실수를 범한 것이다.




 
유비가 전쟁에 지고 나서  "내가 어린 육손에게 패하다니 이것도 하늘이 내린 운수인가" 하며 길게 탄식했다고 한다. 적을 가볍게 보면 반드시 지게 돼 있는데 이것은 기업 경영에서도 자주 보는 사례다. 시대가 달라진 것을 모르고 옛날 생각만 하다 비참한 꼴을 당하는 것이다. 물론 자기가 일으킨 기업을 끝까지 돌본다는 선의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노욕(老慾)은 노해(老害)가 되기 쉬운 것이다. 유비는 전쟁의 결과를 보고받고 참담했다.  "내가 승상의 충언을 들었다면 이 같은 낭패는 안 당했을 텐데. 내가 무슨 낯으로 성도로 돌아가 그들을 볼 것인가" 하고는 백제성을 임시궁전으로 삼아 머물겠다고 선언했다. 패전 소식을 듣고 공명도  "만약 법정이 살아있었다면 오나라 정벌을 말렸거나 그 지경으로까지 패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 이라면서 거듭 탄식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승상 공명이 못한 것을 법정은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각기 특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조직에선 다양한 성격과 용도의 인재가 필요한 것이다.



  패전의 쇼크가 겹쳐 유비는 몸져 눕는다. 병환은 점점 깊어졌다. 유비는 자신의 병을 짐작하고 승상 제갈공명과 상서령 이엄(李嚴)을 백제성으로 불렀다. 공명은 황태자 유선에게 성도를 지키게 하고 2남 유리(劉理), 3남 유영(劉永)과 함께 급히 갔다. 유비는 공명을 보자  "내가 승상을 만나 제업(帝業)을 이뤘으나 마지막에 승상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 같은 낭패를 당했다. 후회막급이다. 내 목숨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마지막 부탁을 하고자 한다. 승상의 재주는 조비보다 10배는 되니 나라를 안정시키고 우리가 못 다한 중원 통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자식이 미흡하니 승상이 잘 지도해 달라" 고 당부했다.



 
그리고 공명을 가까이 오라 하여 등을 어루만지며 “만약 내 자식이 도울 만하면 돕고 그렇지 못하면 승상이 직접 촉한의 주인이 돼 큰일을 이루라”고 말한다. 공명으로선 무시무시한 말을 들은 것이다. 공명은 황망히 유비 앞에 엎드려 변함없는 충성을 거듭 맹세한다. 유비의 그 말이 다른 어떤 말보다도 공명을 감격하게 하고 충성을 맹세하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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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湖北)성 적벽(赤壁)시 적볍대전 진열관에 있는 육손상(象).


  공명이 대신 나라를 차지해도 좋다는 말에서 유비의 진심과 그릇됨을 알 수 있다. 창업 동지라 할 수 있는 공명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부탁한 것이다. 역사상 가장 순수하고 모범적인 군신(君臣) 관계로서 칭송되고 있다. 또 공명을 손권과 비교하지 않고 조비와 비교한 데서 촉나라의 진짜 적은 위나라임을 드러낸 것이다. 유비도 죽음에 임해서야 자신이 고집을 부린 오나라 정벌이 잘못됐다는 것과 조비를 정벌하는 것이 앞으로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선언한 것이다.



 
유비는 두 아들을 불러 공명에게 절하게 하곤  "너희 형제는 앞으로 승상을 아버지처럼 모시면서 지도를 받으라" 고 당부한다. 이쯤 되면 공명은 유비의 아들들을 위해 죽을 힘을 쏟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백제성에 가면 유비가 임종에 즈음해 두 아들을 부탁하는 장면이 새겨진 조각상(劉備託孤圖)이 있어 뭇사람들의 눈물을 적시게 한다. 유비가 공명과 이엄을 같이 부른 것은 당시 형주 세력을 대표한 공명과 익주 세력을 대표한 이엄에게 동시에 아들을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세력은 촉나라의 양대 인맥으로서 은근히 견제 관계에 있었다. 또 조자룡을 가까이 불러  "자룡은 나와의 옛정을 생각해 아침저녁으로 나의 아들을 만나 내 말을 어기지 말도록 깨우쳐주기 바란다" 고 당부했다. 그리고 모든 신하에게 "승상에게 자식들을 부탁하고 아들들에겐 승상을 아버지처럼 섬기라고 했으니 내 뜻을 잘 받들어 주길 바란다" 면서 눈을 감았다. 향년 63세, 황제가 된 지 2년 만이다. 유비는 마지막 고집을 부려 촉나라를 어렵게 했지만 후계구도를 마련하는 덴 통 크고 후덕한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출처 :최우석/ 前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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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에 포스팅합니다.!!
술을 좀 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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