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경영학 (26) - 손권 :: 2007.06.12 20:24


적벽대전을 준비

두루 듣고 심사숙고 후 결행

모두 승복시켜 에너지 결집


  CEO의 결단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CEO는 참모들의 의견은 듣되 최종 결정은 홀로 내려야 한다. 그래서 CEO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피오줌을 싸는 고민을 해봐야 진짜 CEO가 된다는 말이 있다. 적벽대전 전 오나라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이 더 많았다. 그러나 손권은 싸우기로 결정하고 결국 대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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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권은 승계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자 영토 확장에 착수했다. 가장 급한 것이 이웃인 형주를 쳐서 집안의 원수를 갚는 일이었다. 당시 형주는 유표(劉表)가 다스리고 있었고, 오나라와의 접경인 하구(夏口)엔 유표의 부장 황조(黃祖)가 주둔하고 있었다. 황조는 바로 손권의 아버지 손견을 죽인 원수였다. 새로 취임한 손권이 내외에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도 황조를 징벌할 필요가 있었다. 또 장강(長江)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려면 유표와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황조 토벌을 논의할 때 장소(張昭) 같은 사람은 반대했다. 상중(喪中)에 전쟁은 좋지 않고 지금은 집안을 다질 때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유(周瑜)는 빨리 원수를 갚아 새 군주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관 대표인 장소는 항상 신중한 안전책을, 무관 대표인 주유는 적극적 공세를 선호했다. 손권은 두 사람의 의견을 다 잘 듣고 결단을 내리곤 했다.  이때 서부전선 사령관 여몽(呂蒙)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황조의 부하로 있던 감녕(甘寧)이 투항해 왔다는 것이다. 손권은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준 기회" 라면서 즉시 출동할 것을 명했다.


 
손권은 생각을 깊이 하지만 결단과 행동도 빨랐다. CEO로서 큰 장점이다. 위나라 조조도 마찬가지다. 조조도 관도대전 때 원소의 참모 허유(許攸)가 투항해 온 것을 기회로 삼아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반면 유비는 결단과 행동이 다소 늦어 손해 볼 때가 많았다. 당시 속고 속이는 난전 중에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무척 알기 어렵다. 그것을 잘 판단하는 것이 CEO의 안목이다.



 
손권의 기민한 판단에 의해 오나라는 황조를 사로잡고 큰 승리를 거둔다. 이때 감녕이 눈부신 활약을 한다. 이 승리로 인해 손권의 위신이 크게 올라가고 전투 지휘에 자신도 붙었다. 또 감녕이란 큰 인재를 얻었다. 전투가 끝난 후 감녕이 포로가 된 적장 한 명을 자신의 은인이라며 살려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자 손권은 선뜻 들어준다. 감녕은 크게 감읍해 평생 충성을 맹서한다. 그 뒤 감녕은 싸
움터에서 몇 번이나 손권의 목숨을 구하고 큰 공을 세운다.



 
손권은 유용한 인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데 천부적 소질을 보여준다. 나중 유수구(濡須口)에서 위나라와 싸울 때였다. 손권이 사령관으로 주태(周泰)를 임명했는데, 그가 병졸 출신이라 장군들이 잘 승복하려 하지 않았다. 당시 오나라에선 명문 집안이 위세를 부리고 벼슬도 세습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손권은 주태의 위신을 높여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태의 사령부로 찾아가 큰 주연을 베풀었다. 한창 주연이 무르익을 무렵, 손권은 주태의 윗옷을 벗으라 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손권은 그 상처의 유래를 물었다. 주태가  일일이 어느 어느 전투에서 입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권의 형인 손책 때부터 치른 여러 전투에서 입은 상처였다. 손권은 상처 하나하나마다 술 한 잔을 내리고 나중엔 주태를 끌어안으면서  "이 모든 상처가 우리 손씨 가문을 위해 입은 것이 아니냐. 내 평생 어찌 장군을 잊을 수 있겠는가"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광경을 보고 참석자들이 모두 감격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뒤부터 감히 누구도 주태에게 불손하게 굴 생각을 못했다. 이런 일은 연극 같지만 조직과 사람을 다스리는 데는 필요한 절차다.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야 명CEO인 것이다.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한신(韓信)을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할 때도 그렇게 했다. 당시 한신은 군내 서열도 낮고, 특히 적인 항우(項羽)군에서 투항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한신이 천하명장임을 알아본 승상 소하(蕭何)와 명군사(名軍師) 장량(張良)의 건의를 받은 유방은 그를 최고사령관으로 발탁할 결심을 한다. 그러나 다른 장군들의 불만과 저항을 우려했다. 유방은 큰 제단을 쌓게 하고 길일(吉日)을 택해 사령관 임명식이 있을 것임을 공표했다. 모두가 궁금해했다. 막상 그날이 되자 전군이 참석한 후 한신으로 하여금 제단에 오르게 하고 엄숙히 취임식을 거행했다. 유방부터 깍듯이 격식을 차려 한신을 받드니 어느 누구도 감히 거역할 생각을 못했다. 그 배장대(拜將台)가 아직 한중(漢中) 동쪽에 남아 있어 옛 영웅들의 용인술을 생각하게 한다. 이 때 조조는 강적 원소를 깨트리고 중원의 패자가 됐으나 아직 평정하지 못한 지역이 많았다. 북쪽 지방은 원소의 잔당들이, 서북 서량 지역은 마초(馬超)와 한수(韓遂)가, 형주는 유표가 다스리고 있었다. 조조는 북쪽 지방의 평정에 정신이 없어 남쪽인 장강 지역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이 틈을 이용해 손권이 자기의 세력권을 넓혀 간 것이다. 손권은 조조가 언젠가 쳐내려 올 것으로 보고 함대를 증강하고 수군들의 훈련을 서둘렀다. 2년여에 걸쳐 원소의 잔당들을 소탕한 조조는 관심을 남쪽으로 돌려 장강 중부의 요지인 형주
땅을 노렸다.



 
형주 북쪽은 유비가 유표의 객장(客將)으로 지내며 지키고 있었다. 유비도 조조의 남침에 대비해 군사(軍師) 제갈공명과 더불어 군사를 모으고 방어 태세를 강화했다. 몇 번의 국경 분쟁에서 위나라 군사들이 유비군에게 깨지자 조조는 직접 대군을 거느리고 쳐내려 왔다. 마침 그때 형주목(荊州牧) 유표가 노환으로 죽어 둘째 아들 유종(劉琮)이 그 뒤를 이었다. 유약한 유종은 신하들의 의견에 따라 깨끗이 항복하고 만다. 졸지에 설자리를 잃은 유비는 남쪽으로 도망가지만 뒤쫓아 온 조조군에게 참혹하게 깨진다. 유비와 공명은 겨우 목숨만 부지해 유표의 큰아들이 지키고 있던 강하(江夏)로 도망갔다. 조조는 형주를 차지하기 위해선 큰 전투를 치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유종의 항복으로 무혈입성하다시피 했다. 항복 당시
형주엔 10만여 명의 군사와 7,000여 척의 군함이 있었다 한다.



 
형주를 차지한 조조는 이 참에 손권의 강동 땅까지 평정하여 천하통일을 이룰 생각을 했다. 형주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손권은 장강을 거슬러 올라와 시상(柴桑)에 진을 치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먼저 노숙을 형주에 보내 정세를 파악하게 했다. 노숙은 유비를 만나 오갈 데 없는 그에게 오나라 손권에게 의탁할 것을 권했다. 노숙은 항전파(抗戰派)여서 유비군을 이용해 조조군과 싸울 속셈이었다. 노숙은 유비가 형주 사람들에게 인망이 있고 따르는 무리들이 많으므로 이들을 모아 조조군에 대항한다는 전략이었다. 유비와 제갈공명은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손권군에 한줄기 희망을 걸었다. 그래서 공명은 노숙과 같이 손권을 만나러 갔다. 손권을 설득해 조조와 싸우게 하고 그 기회를 이용해 유비가 자립할 발판을 마련한다는 전략이었다. 이 때 오나라에선 국책을 정하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형주를 차지한 조조는 오나라에 최후통첩을 보내 자진해 복종할 것을 권했다. 조조의 통첩은 한나라 천자의 이름으로 온 것이라 거절하면 한나라에 거역하는 것이 된다. 조조는 형주를 차지한 여세에 80만 대군을 자랑하며 손권의 강동쯤은 간단히 점령할 기세였다. 장소 등 문관들은 저항하지 말고 항복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면 오나라는 위나라의 속국(屬國)이 되지만 나라와 백성들은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저항해 봤자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현실론을 내세웠다. 오나라가 믿었던 것은 장강과 막강한 수군인데 조조가 형주를 차지해 많은 군함과 기지, 또 훈련된 수군을 거두었으므로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유 등 무관들은 조조에게 한 번 항복하면 오나라의 독립성은 무너지고 영원히 위나라에 매여 살게 된다고 반박했다. 어떻게 일으킨 오나라인데 한 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항복하느냐면서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그 틈에 끼어 손권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
했다. 까딱 잘못하면 물려받은 강동의 가업을 몽땅 날릴 판이었다.


  이 때 손권의 나이 27세. 오나라의 CEO가 된 지 9년 만이다. CEO의 결단은 아무도 대행해 줄 수가 없다. 참모들의 의견은 듣되 최종 결단은 CEO가 내려야 한다. CEO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정말 기업의 명운이 걸렸을 땐 잠을 잘 수도 없고 밥도 먹을 수가 없다 한다. 참모들도 마찬가지겠지만 CEO가 받는 압박감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피오줌을 싸는 고민을 해봐야 진짜 CEO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 살벌한 긴장 속에 바른 결단을 내리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강해야 한다. 타고난 자질도 있지만 평소의 부단한 담금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참모들이 여러 의견을 내놓지만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다수결로 할 수도 없다. 기업 경영에서 모두가 찬성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이 찬성할 땐 이미 비즈니스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가 많으면 위험이 그만큼 높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줄기 희망을 보고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성공시켜야 위대한 CEO가 되는 것이다. 과거 삼성의 반도체사업이나 현대의 조선사업 등이 모두 그랬다.



 
당시 오나라에선 항복하자는 것이 대세였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손권은 젊은 혈기도 있어 조조 밑에 들어가기는 싫었으나, 신하들의 반대를 누르고 전쟁을 강행할 권위나 힘이 없었다. 막상 싸우려 해도 승산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3대째 이어온 오나라를 그냥 조조에게 바치기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손권은 고민을 거듭해 눈에 띄게 초췌해졌다. 손권의 어머니가 보다 못해  "무슨 걱정거리가 있어 잠도 못 자고 음식도 못 드느냐" 고 묻는다. 손권이 사정을 이야기 한즉  "너희 형 손책이 죽을 때 바깥일은 주유에게 물어보라 하지 않았느냐" 고 일러 준다. 마침 주유는 파양호(陽湖)에서 수군을 조련하고 있다가 위급한 소식을 듣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 무렵 형주로 정세를 알아보러 갔던 노숙이 공명과 함께 돌아왔다. 다시
국방회의가 열렸으나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손권이 회의 도중 잠시 쉬고 있을 때 노숙이 혼자 다가왔다. 형주 정세를 간단히 보고하고는  "항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만을 도모하지 주공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조조에게 항복해도 우리 신하들은 고향에 기반이 있어 높은 벼슬을 받고 지금과 같은 부귀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공은 이제까지 나라의 주인이셨는데 조조에게 항복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하고 손권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다. 손권도 놀란 듯  "나도 싸우고 싶으나 모두가 반대하니 고민이오" 하고 본심을 털어놓았
다. 노숙은 손권과 공명의 회담을 주선했다.



 
공명은 손권을 만나자마자  '이 사람의 기상이 보통이 아니니 달래서는 안 되겠고 격분시켜야 되겠구나' 하고 작정한다. 그리고 대뜸  "싸우든지 항복하든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애매하게 처신하면 큰일 납니다. 조조가 80만 대군을 거느리고 왔으니 항복하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하고 은근히 충동질을 했다. 손권이 "왜 당신의 주공 유비 장군은 항복하지 않느냐" 고 묻자  "조조가 천하의 역적인데 의(義)를 제일로 여기는 우리 주공이 어떻게 항복을 합니까. 이기고 지는 것은 하늘의 뜻이고 의를 위해 끝까지 싸울 뿐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잘 들으면 손권을 매우 모욕하는 말이었다. 손권은 벌컥 화를 내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노숙이 급히 들어가 손권을 달래어 나온다. 잘못을 알면 얼른 고치는 것이
손권의 장점이었다.



 
그 뒤 공명은 조조가 80만 대군이라지만 실은 군심(軍心)이 불안하다는 것, 아직 형주 백성들이 심복하지 않고 있다는 것 등을 설명하고 오나라의 막강한 수군과 장강의 험난함을 이용하면 승산이 있다는 것을 역설했다. 또 유비가 동원할 수 있는 군사도 2만여 명이나 있다고 설명했다. 손권에겐 솔깃한 말이었다. 공명은 오나라 신하들과 토론을 벌여 그들을 설득시키고 특히 주유를 충동질해 결사항전을 하도록 만들었다. 공명은 외교가로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것이다. 항복하기 싫어했던 손권은 어느 정도 승산이 서자 마음속으로 결심을 하고 마지막 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막강한 실력자 주유가 앞장서 항전을 주장하고 나서는 데다 3대를 이어온 오나라가 한 번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명분론이
겹쳐 점차 항전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주유는 전략적으로 첫째, 조조가 후방에 마초, 한수 같은 잠재 적들이 버티고 있는데 너무 멀리 남정(南征)을 왔고 둘째, 물에 약한 북쪽 군사들이 장강을 낀 오나라와 수전을 하려하고 있으며 셋째, 겨울엔 말을 먹일 풀이 없는 데다 넷째, 북쪽 군사들은 남쪽의 물과 기후가 맞지 않아 전염병이 많이 생길 것이므로 비록 군사가 많다 해도 힘을 쓸 수 없다고 역설하고  "나에게 5만의 군사만 주면 조조군을 깨끗이 깨뜨리겠다" 고 장담했다.  말없이 듣고 있던 손권이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 위해 일어섰다.  "이제 결심은 섰다. 조조는 한나라를 찬탈하려는 역적이다. 조조가 무서워한 것은 원소, 원술, 여포, 유포 그리고 나였는데 모두 죽고 나만 남았다. 내가 기필코 조조 같은 역적을 토벌하겠다" 고 서두를 떼고는 차고 있던 칼을 빼 눈앞의 탁자를 내리치면서  "앞으로 항복을
말하는 자는 이 탁자 같이 될 것이다" 라고 못을 박는다.



 
그리고 주유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는  "지금 당장 5만 명의 군사를 모으기는 어려우나 우선 3만 명을 줄 테니 즉각 출동하라. 내가 나머지 군사를 모아 뒤따라가겠다. 가서 조조군과 싸워 보고 여의치 않으면 나를 기다려라. 그땐 내가 직접 조조와 자웅(雌雄)을 결(決)하겠다" 고 선언했다. 이렇게 되니 어느 누구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오나라가 거국일치(擧國一致) 조조와 한판 결전을 벌이기
로 합의한 것이다.



 
손권이 다양한 의견을 들어 결론을 도출해 가는 의사결정 과정이나 여러 변수를 감안해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최종 국책으로 공표하는 타이밍과 형식이 정말 절묘하다. 모두가 납득하고 승복하게 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한 것이다. 그 합리성과 정통성, 또 분위기 때문에 모두 긴장하고 분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멋진 회의를 통해 힘찬 에너지를 모으는 것은 뛰어난 CEO만이 할 수 있다. 권은 그때 이미 적벽대전에서 압승할 수 있는 기백과 에너지를 불붙였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최우석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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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괜히 피곤합니다.
어제는 그러고 보니 방문량이 급증했더군요.
리퍼러 기록을 살펴보니 도메인을 통해 누군가? 검색을 하신 분들도 많네요. 헛수고하셨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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