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경영학 (30) - 손권 :: 2007.07.03 20:10

손권 지모로써 형주를 무혈 점령

뛰어난 전략가 여몽 키우고
관우 방심케 해 형주 탈환


  손권은 물려받은 인재들도 잘 썼지만 스스로 인재를 잘 키웠다. 여몽은 손권이 공들여 키운 심복 장수였다. 관우로부터 형주를 탈환하는 작전을 맡은 여몽은 새파란 육손을 사령관에 앉히는 계략을 쓴다. 이에 속은 관우는 오나라는 위협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하고 후방을 비워 놓은 채 번성을 공격한다. 이 틈을 타 손권은 형주를 기습 탈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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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는 위나라 번성을 공격하다 허를 찔렸다. 사진은 번성과 마주보고 있는 양양의 성 유적.(지금의 번성과 양양이 합쳐 양번시가 됐다)



  손권은 유비가 빌려 간 형주(荊州)를 돌려줄 생각을 않자 무력으로 뺏어 올 궁리를 한다. 적벽대전 후 손권은 유비에게 형주를 빌려 줘 위나라 조조의 위협에 대한 방파제로 삼으려 했던 것인데, 유비는 형주와 익주를 기반으로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속셈이 다르니 평화적 타결이 어려웠다. 
손권이 형주를 뺏어 오려면 먼저 조조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손권이 유비와 싸우는 걸 알면 조조가 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손권은 교묘한 외교전을 편다. 마침 조조도 유비를 무척 괘씸하게 생각하던 터라 손권과 조조의 타협이 쉽게 이뤄진다. 물고 물리는 삼국시대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었다.



  조조는 유비가 한중왕(漢中王)이 됐다는 보고를 받자  "시골에서 짚신이나 짜던 놈이 감히 이럴 수 있느냐" 면서 펄펄 뛴다. 위왕(魏王)이 된 자신에게 대항해 유비가 한중왕이 된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직접 유비를 토벌하러 가겠다며 동원령을 내린다. 이때 핵심 측근이었던 사마의(司馬懿)가 나선다. 사마의는 "유비를 치려면 손권부터 달래야 합니다. 지금 형주 때문에 둘 사이가 좋지 않으니 우선 둘을 떼어 놓아 서로 싸우게 하고 그 뒤 하나씩 격파해야 합니다" 하고 조조를 설득했다. 명석한 조조는 즉각 행동에 착수했다. 손권에게 사신을 보내 화평의 손길을 내민다. 조조는 위나라에서 형주 북쪽을 칠 테니 오나라는 형주 남쪽을 뺏어 차지하라고 제의한다. 그리고 위나라와 오나라가 불가침조약을 맺자는 것이다.
이 제의를 받은 오나라 내부에서 의견이 갈렸다. 장소(張昭) 같은 원로는 조조와 잘 지내자는 입장인 데 비해 제갈근(諸葛瑾)은 유비와 연합해 조조에 대항하자는 입장이었다. 이때 오나라의 병권(兵權)은 노숙이 죽은 후 여몽(呂蒙)에게 넘어가 있었다. 손권은 형주도 탐났지만 조조가 차지하고 있던 북쪽 서주(徐州) 땅도 차지하고 싶었다. 여몽의 의견을 구한즉 촉나라로부터 형주를 뺏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대답이었다. 손권의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 때 제갈근이 위나라도 함부로 믿을 수가 없으니 형주 사정을 한 번 살핀 다음 최종 방침을 정하자고 한다.



 
당시 촉나라의 형주 방위사령관은 관우였다. 제갈근의 의견은 관우에게 딸과 손권 아들의 결혼을 제의해서 성사되면 관우와 힘을 합쳐 조조에게 대항하고 잘 안 되면 조조와 연합해 관우를 치자는 것이었다. 손권은 이를 허락한다. 그래서 제갈근이 관우에게 혼인 이야기를 꺼냈으나 관우는 한마디로 거절하면서  "범의 딸을 어찌 개의 자식에게 줄 수 있느냐" 며 인격적 모독까지 해버린다. 그러면서 승상의 낯을 보지 않았으면 당신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며 제갈근을 쫓아 버린다. 콧대 높은 관우의 큰 실수였다. 당시 관우는 유비의 의형제로 촉나라의 실력자인 데다가 형주 땅에 너무 오래 있어 오만해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한자리에 너무 오래 있으면 긴장이 풀어져 자만에 빠지기 쉽다. 막강한 자리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위대한 CEO는 아랫사람의 긴장이 풀리지 않도록 항상 의표를 찌르는 과감한 인사를 한다. 인사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난다. 그래서 큰 자리의 인사이동일수록 냉철하게 전격적으로 해치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혼인 이야기를 성도(成都)의 제갈공명이 전해 듣고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관우를 그대로 형주에 두면 오나라와의 관계가 위험해진다고 보고 유비에게 관우를 불러들이고 다른 사람을 보내자고 건의한다. 그러나 관우가 워낙 거물인 데다 후임자도 마땅치 않아 미적거리다가 관우의 승전보가 계속 올라오자 안심하고 만다. 공명은 평소 관우의 콧대 높음에 애도 먹고 걱정도 했으나 관우를 제어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관우의 인사문제는 승상인 공명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고 유비의 결심이 필요했다. 그러나 유비는 정이 많고 인사에 냉철하지 못했다. 유비는 관우를 매우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명이 형주를 관우에게 맡기고 익주로 들어가면서 신신당부한 것이 있다. 동쪽의 오나라와 잘 지내면서 북쪽의 조조에 대항하라는 것이었다. 그 기본 전략을 관우가 잊어버려 손권과의 신뢰관계가 흔들린 것이다.  그래도 노숙이 오나라의 병권을 쥐고 있을 땐 콧대 높은 관우를 잘 달래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가 그런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령관 여몽은 필요하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정세 변화를 관우는 간과했던 것이다. 과연 공명의 우려대로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혼인 제의에 대한 관우의 반응을 전해 들은 손권은 매우 화를 내면서 관우를 징벌할 결심을 한다. 조조와 제휴해 촉나라를 치기로 오나라의 국책을 정한 것이다. 관우는 그것도 모르고 형주 북쪽으로 원정을 나가고 처음엔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조인이 지키던 번성(樊城)을 포위하고 위나라 군사를 대파해 중원에 쳐들어갈 기세를 보인다.
관우의 기세에 놀란 조조가 도읍인 허창(許昌)을 옮기려 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관우의 원정군과 위나라는 결사적으로 싸우게 된다. 이 틈을 노려 손권은 형주 탈환 계획에 착수해 여몽에게 집행을 맡긴다. 여몽은 손권이 공들여 키운 심복 장수였다. 손권은 물려받은 인재들도 잘 썼지만 스스로 인재를 잘 키웠다.



관우릉에 있는 적토마상.
▶관우릉에 있는 적토마상.
 


▶관우가 최후를 맞이한 맥성.
▶관우가 최후를 맞이한 맥성.
 



  여몽은 집이 몹시 가난해 어릴 때부터 자형(姉兄)을 따라다니며 전장에서 컸다. 용감하고 자질이 뛰어나 적벽대전 때도 주유 밑에서 활약했다. 손권은 여몽의 그릇됨을 알아보고 총애하며 병력 관리를 시켰다. 여몽은 일찍부터 전쟁터를 전전하느라 학문할 틈이 없었다.
손권이 하루는 여몽을 불러 책을 읽고 공부를 하라고 타일렀다. 여몽이 군무에 바빠 책 읽을 틈이 없다고 하자 손권은 "장군에게 학문을 익혀 박사나 학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무장이라도 용감함만으론 위대한 장수가 될 수 없다. 학문을 알아야만 큰 싸움을 할 수 있고 사람도 거느릴 수 있다. 동서고금의 역사책이나 치국법을 알아야 한다. 장군이 바쁘다고 하지만 나만큼 바쁘겠는가. 나도 바쁜 틈을 내어 옛날의 좋은 책들을 읽으려고 애를 쓴다. 아무쪼록 학문에 힘써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라" 고 간곡히 당부한다. 크게 감격한 여몽은 그날부터 발분해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 학문에 정진했다. 몇 년이 지나 총사령관 노숙이 여몽의 부대에 시찰을 나왔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환담을 하는데 여몽의 깊은 지식에 매우 놀란다. 노숙은 "이제까지 장군을 용감한 무장으로만 보았는데 오늘 당신의 식견에 놀랐다. 옛날의 여몽이 아니구나" 하고 감탄했다. 여몽은 "선비와 헤어지고 사흘 만에 보면 눈을 씻고 다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한다. 선비란 늘 발전하는 것이니 옛날 생각만 하면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노숙은 죽으면서 자신의 후임으로 여몽을 추천했다. 두 사람의 전략은 약간 달랐다. 노숙은 정치외교적 고려까지 해서 유비와의 연대관계에 주력한 데 비해 여몽은 형주 탈환을 중시했다. 관우도 형주 북쪽으로 군사를 끌고 가면서 오나라에 대한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오나라가 호시탐탐 형주를 노리고 있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주 후방에 상당한 병력을 남겨 두고 갔다. 그리고 형주 북쪽까지 봉화대를 연결해 긴급사태가 나면 즉각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해 놓았다. 여몽은 먼저 관우를 안심시키는 작전에 나섰다. 관우는 뛰어난 무장이면서도 늘 책을 가까이하고 자존심이 강했다. 지식인들이나 학문하는 사람들을 별로 존경하지 않았고 고위관리나 고급 장교들을 엄하게 다뤘다. 출정 준비를 하던 중 선봉장으로 예정돼 있던 부사인(傅士仁)과 미방( 芳)의 실수로 병영에서 불이 나는 사고가 난다.  관우는 둘을 매로 다스리고 출정 명단에서 빼버렸다. 그리고 부사인에게 공안(公安)을, 미방에겐 형주성을 지키게 하면서 전선 보급을 소홀히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겁을 주고 갔다. 이 둘은 평소 관우에게 야단을 많이 맞아 속으로 원망을 품고 있었다. 관우는 그들을 믿지도 않으면서 후방을 맡기고 간 것이다.  "의심하면 쓰지 말고 쓰면 의심하지 말라" 는 것이 인사의 기본 원칙인데 관우는 스스로 파멸의 불씨를 심은 것이었다. 그 후 두 사람은 군량 보급을 게을리한다고 관우가 벼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더욱 전전긍긍하게 된다. 미방은 촉나라 제일의 창업공신인 미축(竺)의 동생으로 30여 년이나 유비를 따라다녔다. 관우는 공명의 형인 제갈근을 모욕을 줘서 내쫓더니 유비의 측근 원로인 미축의 동생도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여몽은 관우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 들어 간다. 우선 여몽은 몸이 아프다는 구실로 사직을 청원한다. 관우의 경계심을 없애기 위해서다. 손권은 여몽의 후임에 새파란 육손(陸遜)을 기용한다. 육손은 일찍부터 뛰어난 자질을 보여 손권이 마음먹고 키우고 있었으나, 아직은 무명의 젊은 장군에 불과했다. 손권의 형인 손책의 사위로 겉으론 처가 배경으로 출세한 것처럼 보였다. 
육손은 사령부가 있는 육구(陸口)로 부임하자마자 관우에게 정중한 인사장과 예물을 보낸다. 관우의 무공을 높이 치켜세운 다음 자신은 어려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 잘 지도편달해 주시기 바란다는 취지로 관우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 줬다. 이 정중한 편지를 받고 관우는 매우 흡족해한다. 오나라의 새 사령관은 자기를 알아주는 기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버겁던 여몽 대신 무명의 육손이 왔으니 이제 오나라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해 버린다. 더 나아가 형주 전선 같은 중요한 자리를 육손 같은 어린애에게 맡기는 손권은 사람을 잘못 쓴다는 생각마저 한다.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전략을 생각하고 결단하는 것이 바로 손권의 강점이다.



 
마음을 놓은 관우는 공안과 형주에 남겨 뒀던 군사를 빼내 북쪽 전선에 투입한다. 형주 본거지가 텅 비자 이 기회를 놓칠세라 여몽은 비밀리에 80여 척의 날랜 함정에 경무장한 정예병을 싣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손권은 여몽에게 자기의 사촌동생인 손교(孫皎) 장군과 같이 가면 어떠냐고 묻는다. 여몽은 두 사람이 같이 가면 지휘권에 혼선이 생기니 자신과 손교 장군 중 한 사람을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손권은 얼른 알아듣고 여몽이 지휘권을 맡되 손교 장군은 후방에서 보급을 챙기라고 명령한다. 지휘권 문제는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흔히 오너나 CEO의 측근이 지휘권과 상관없이 끼어들어 혼선이 빚어지고 경영 실패가 생기게 된다. 권한과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해져 일이 효율적으로 안 되기 때문이다. 또 신상필벌과 기강이 안 잡혀 조직 전체가 이상해지기도 한다. 조직의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손권은 CEO의 요체(要諦)를 터득했다고 할 수 있다.  여몽은 무장시킨 병사들을 배 밑창에 숨게 하고 배 위에는 장사치로 변장한 수군들이 배를 몰았다. 먼저 선발대가 형주 부근에 가서 봉화대 옆에 배를 댔다. 형주 수군들이 검문을 나오자 자신들은 장강을 무대로 한 장사치인데 폭우 때문에 대피차 정박했다고 변명한다. 그리고는 장사하는 물건이라며 술과 음식 등 선물을 잔뜩 안겨 줬다. 형주 수군들은 의심 없이 정박을 허용한다. 그리고 선물 받은 술로 술타령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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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이 되자 여몽의 수군들은 일제히 초소를 급습해 모두 점거해 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여서 봉홧불이 올라갈 틈이 없었다. 여몽은 포로로 잡은 형주 수군들을 달래 공안성으로 가서 성문을 열게 하고 기습점령해 버린다. 공안성을 지키던 부사인은 관우에게 찍혀 있던 터라 대항할 생각이 없었다. 순순히 성을 내주었음은 물론 여몽의 지시대로 이웃인 형주성에 항복을 권유하러 갔다. 형주성을 맡고 있던 미방은 처음엔 주저했으나, 부사인이  "지금 버텨서 관우가 돌아온다 해도 우리 둘은 죽은 목숨" 이라고 설득하자 결국 항복에 동의한다. 이렇게 여몽은 무혈입성하다시피 형주성을 점령해 버린다. 형주성을 점령한 여몽은 회유책을 써서 백성을 안심시킨다. 관우 가족을 비롯한 출전 병사들의 가족을 보호하고 예전대로 식량도 지급했다.  관우가 형주 함락 사실을 모르는 사이 여몽은 장강 북쪽 촉나라로 가는 길을 봉쇄하면서 관우를 남쪽에서 압박하는 작전을 폈다. 관우의 원정군은 남북 양쪽에서 대군을 맞게 된 것이다. 이때 육손은 별동대를 거느리고 장강 북쪽을 점령해 촉나라 구원군이 강을 타고 내려오는 것에 대비했다. 형주 등 본거지가 오나라에 점거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관우는 믿지 않았다. 이때 조조 측에서 관우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준다. 관우로 하여금 번성의 포위를 풀고 오나라와 싸우게 하기 위해서다. 관우는 형주성을 탈환하기 위해 급하게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형주 출신의 부하들이 관우와 더불어 싸우려 하지 않았다. 가족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부대를 이탈해 형주로 갔다. 순식간에 관우 원정군은 사라져 버렸다. 급한 김에 관우는 맥성(麥城)으로 피신하고 제일 가까운 상용(上庸)의 촉 진영에 구원을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쪽의 사령관들이 평소 관우로부터 괄시를 당해 목숨을 걸고 구원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관우는 진퇴유곡(進退維谷)의 고달픈 신세가 됐다. 불과 한 달 사이의 급전직하(急轉直下)다. 관우는 궁여지책으로 북쪽 촉나라를 바라보고 탈출하다 장향(章鄕) 부근 협석(夾石)에서 여몽이 미리 깔아 놓은 포위망에 걸려 잡히고 만다.



 
관우의 무용을 탐낸 손권이 항복을 권유했으나 완강히 거절하고 아들 관평(關平)과 함께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다. 관우는 유비 외엔 누구에게도 충성을 바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무겸전의 무장으로서 천하가 두려워했던 관우는 58세의 파란 많은 생애를 이렇게 허무하게 끝냈다. 손권으로선 목의 가시 같았던 촉나라 형주사령관 관우를 교묘하게 제거하고 그토록 바라던 형주 땅을 무혈(無血)로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작전을 꾸미고 실행한 것은 여몽이지만, 여몽으로 하여금 그런 큰일을 하도록 만든 것은 역시 손권의 깊은 정세 읽기와 외교력, 또 결단과 행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최우석 前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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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옮겨 적어 봤습니다. 요근래 음악관련 포스팅만 하다가 써서 그런지 감회가 새롭습니다. ^^ 이제 삼국지 경영학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영풍문고 가서 잠깐 삼국지 경영학 단행본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뭐 살것도 아니면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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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mckdh.net BlogIcon 산골소년 | 2007.07.05 09:42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블로그는 번창하고 계신지요~ RSS구독하여 잘 읽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어제 삼국지 경영학 저자와의 오찬 모임 이벤트에 뽑혀서 다녀온 후기를 썼는데~

    아도니스님이 생각나서 트랙백을 보냅니다.

    최우석님 은은한 위엄이 멋진 분이셨습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 ^^

    • Favicon of http://fafagel.com BlogIcon 아도니스. | 2007.07.06 15:56 신고 | PERMALINK | EDIT/DEL

      RSS구독까지 하신다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둘러보니까 최우석님과의 오찬 모임이 너무나 부럽더군요. 그래도 사진 많이 찍으셨어요. (사진 찍을 엄두가 잘 안 날것 같은데도 말이죠.!!)

      산골소년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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