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경영학 (35) - 손권 :: 2010.11.22 04:06

‘황태자’ 지지한 중신 처벌.
기강 문란해져 망국 초래.


 큰 기대를 걸었던 장남 손등이 병사하자 손권은 셋째 손화를 황태자로 앉혔다. 그러면서 넷째인 손패를 더 총애했다. 손패를 떠받드는 세력이 생겨나면서 오나라 황실에선 후계를 둘러싼 암투가 전개된다. 이미 60이 넘어 총명이 바랜 손권은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기는 커녕 권력다툼을 부추긴다.

 손권이 말년에 저지른 치명적 실수는 바로 황태자를 둘러싼 소동이다. 손권의 집안은 매우 번창해 자식이 많았다. 아버지 손견의 아우인 손정(孫靜)의 자손을 비롯해 형 손책의 자식도 많았고, 손권의 아들은 7명이나 됐다.
자식이 많으면 황실의 울타리가 될 수 있으나 잘못하면 집안 분란으로 번질 수 있다. 군주가 집안을 잘못 다스리거나 후계자 선정에서 실수하면 집안 분란으로 끝나지 않고 권력투쟁이 일어나 끝내 나라가 기우는 사태로 치닫게 된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창업주 오너가 후계자 선정을 모호하게 해 소위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그 때문에 사세가 급격히 기우는 사례를 많이 봤다. 기업 경영엔 매우 냉철했던 경영자도 승계 문제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비즈니스와는 달리 자신의 감정과 이해가 너무 민감하게 작용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손권은 일찍부터 큰아들 손등(孫登)에게 기대를 걸었다. 손등은 인망이 두텁고 효심도 뛰어나 손권이 왕이 되자 바로 왕세자가 됐고 황제가 됐을 땐 황태자로 승격했다. 손등의 주변엔 같은 또래의 우수한 젊은이를 배치해 공부도 같이 하게 해 장래에 대비하게 했다. 누가 보기에도 확정된 후계자여서 모든 신하가 손등을 받들어 모셨다. 그러나 불행히도 손등은 황태자가 된 뒤 12년 후 33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고 말았다. 손권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9년 전에 둘째 아들 손려(孫廬)를 보낸 적이 있는지라 더욱 애통해했다. 둘째도 큰아들 못지않게 똑똑하고 인망이 높았다. 둘째가 죽었을 때 손권은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했다. 당시 큰아들 손등은 육손과 함께 무창(武昌)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건업으로 달려갔다. 나랏일도 놓은 채 몸져누운 아버지 손권에게 간곡히 말했다.

 “북방 땅은 아직 통일되지 못하고 천하가 어지러워 모든 백성이 아버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보통사람과 같이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식사도 아니 드시니 백성은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까” 하니 손권은 깨달은 바 있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식사를 했다고 한다. 애초 예정엔 열흘 쯤 뒤엔 임지인 무창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계속 건업에 남았다. 그 후 손권이 전쟁에 나갈 때마다 손등이 도성에 남아 일을 맡았는데 일처리가 절도 있고 관대해 여러 사람의 칭찬을 받았다. 그처럼 똑똑하고 효심 깊은 큰아들이 병사했으니 손권의 애통함은 옆에서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손등은 병상에서 손권에게 올리는 마지막 편지를 썼는데, 먼저 이승을 하직하는 불효에 대해 용서를 빌면서 “이것도 모두 운명인 것 같으니 못난 자식 일은 잊어버리고 식사도 드시면서 나랏일을 챙기셔야 저도 편히 눈을 감겠다”고 썼다. 그러면서 세금을 가볍게 하고 형벌은 관대하게 하되 여러 신하의 의견을 잘 들어줄 것을 간곡히 건의했다. 이 편지를 읽고 손권은 더욱 애통해하며 손등의 말이 나올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한다. 손등은 아버지 손권이 점차 무리하는 것을 보았는지라 죽으면서 마지막 충간(忠諫)을 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썼는지 모른다. 손등은 동생 손화(孫和)가 어질고 현명하니 황태자 노릇을 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권은 셋째 아들 손화를 황태자로 삼았다. 손화는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재주도 있어 손권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그러나 손권의 나이 이미 60이 넘어 약간 총명이 바랠 때였다.

 그래서 손권을 둘러싼 여자들의 말에 많이 현혹됐다. 손권은 손화를 황태자로 세우면서 넷째인 손패(孫覇)를 노왕(魯王)으로 봉해 궁정에서 같이 살게 했다. 궁정에 두 아들이 사니 자연히 말이 많았다. 손패에 대한 손권의 사랑이 각별하자 은근히 손패를 떠받드는 세력이 생기게 됐다. 이때 손권이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했는데 연로해서 그랬는지 그걸 못했다. 그 때 손권은 딸인 노반(魯班) 공주를 매우 총애했다. 노반 공주는 손화의 어머니인 왕 부인과 몹시 사이가 나빴다. 노반 공주는 손화가 손권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면 왕 부인이 태후가 되는 것이 싫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왕 부인과 손화를 모함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그런 소리를 자주 들으니 손권도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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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와 황태자 사이는 매우 묘한 법이다. 매우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조심스럽다. 황태자가 있으면 자연히 그쪽으로 붙는 세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면 황제는 서운함을 느끼고 의심을 하게 된다. 특히 황태자의 라이벌들이 있어 같이 모함을 하게 되면 의심은 도를 넘어 혹시 역심을 품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기업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후계자는 매우 어려운 처지가 된다. 적극적으로 일을 하면 벌써 힘을 쓰려 한다는 말이 나오고, 그렇다고 조심하면 소극적이고 일을 안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후계자는 매우 높고 고귀한 자리지만 마음 고생도 그만큼 따르는 것이다. 미국의 부통령 같은 자리에 비유될 수 있다. 어느 부통령이 한 말이 있다. “나는 지금 지위만 높을 뿐 아무 힘도 없다. 그러나 언젠가 모든 힘을 가질 가능성은 있다. 즉 예비 타이어와 같은 처지다.”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즈음해서 손권은 병석에 자주 눕게 된다. 고령에다 긴장이 풀린 탓도 있을 것이다. 한 번은 황태자가 손권 대신 종묘에 제사를 올리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처숙부의 집을 잠깐 방문했다. 그 사실을 알고 노반 공주는 손권에게 황태자가 종묘에 간다는 핑계로 처가에 들러 빨리 황제가 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참소한다. 그런 말이 늙고 병든 손권에겐 실제 먹혀들었다. 손권은 매우 진노해 황태자를 본격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차츰 넷째인 노왕 손패에게 더 관심을 보인다. 손권이 손패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자 그쪽으로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다. 손권이 계속 황태자를 차갑게 대하니 손패를 지지하는 세력이 늘어났다. 손권의 뜻대로 황태자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나라 조정은 두 패로 갈려 암투가 시작됐다. 손권은 부하들의 싸움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대장군 육손(陸遜)을 비롯한 중신은 적통(嫡統)대로 황태자를 지지했다. 원소(袁紹)나 유표(劉表)의 경우와 같이 장자를 제치고 순서를 뒤집으면 망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손권은 이상한 행동을 한다. 황태자를 지지하는 중신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하들이 손권에게 간언하면 처음엔 짜증을 냈다가 나중엔 가차 없이 처벌했다. 궁중에 불러다 매를 때리기도 하고 귀양도 보내며 나중엔 일가를 반역죄로 몰아 처형하기도 했다. 오나라 전역에 음산한 바람이 불었다. 그럴수록 손패 지지파가 힘을 얻었다. 총명했던 손권이 말년에 왜 그렇게 변했는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과 관련된 일엔 평소의 총명이나 이성은 가려지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권력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황태자를 견제하는 심리가 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황태자를 편드는 모든 사람을 의심해 잔인하게 처벌한다. 그것은 황태자 시대가 됐을 때 부담이 되는 중신을 제거한다는 명분도 있다.

이런 일은 20세기의 위대한 기업인인 헨리 포드도 비슷했다. 헨리 포드는 외아들인 에델 포드가 25세가 됐을 때 사장 자리를 물려줬다. 그러나 실권은 놓지 않았다. 아들을 사랑하면서도 아들이 일을 하려 하면 은근히 견제했다. 아들이 결정하고 해놓은 일을 뒤집기 일쑤였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했다. 포드는 말년에 폭력조직과 관련 있는 강성인물을 데려다 놓고 막강한 권력을 줬다. 그는 사장인 아들보다 더한 권력을 휘둘렀다. 아들이 가끔 그를 견제하려 했으나 헨리 포드는 어쩐 일인지 아들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포드사엔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고 누구도 바른말을 못했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포드와 함께 회사를 키운 자동차 전문가들이 회사를 떠났다. 한 번은 에델이 마음먹고 아버지께 바른말을 하다가 크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에델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회사를 떠나려 했다. 주위의 만류로 그만두지는 않았지만 결국 암이 온몸에 번져 병사하고 말았다. 헨리 포드도 큰 충격을 받았지만 아들이 왜 그렇게 괴로워했는지 알지 못했다. 아들이 죽고 난 뒤 포드는 아들을 괴롭힌 바로 그 강성인물을 사장 자리에 앉히려 했다. 포드의 아내를 비롯한 주위에서 결사적으로 말려 겨우 그만뒀지만 대신 포드 자신이 다시 사장 자리에 앉았다. 포드가 80세 때의 일이다. 이렇게 권력을 내놓기 싫어하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창업자 오너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경영권을 내놓지 않았다. 권력욕이라기보다 자신이 이룬 기업을 끝까지 돌봐야 한다는 생각, 후대를 못 미더워하는 생각들이 겹친 것이지만 모두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나이 많은 창업주는 지나간 성공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옛날 사고방식을 고집하다 기업을 벼랑으로 몰고 간 경우가 많다. 헨리 포드도 T형 자동차의 신화를 고집하다 슬로언 사장의 제너럴 모터스(GM)에 시장을 다 뺏긴 전례가 있다. 슬로언 사장은 자서전에서 만약 포드의 실수가 없었다면 GM이 결코 포드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썼다. 또 21세기의 위대한 경영자로 기대되고 있는 빌 게이츠는 위대한 기업가가 어떻게 잘못될 수 있는지 교훈으로 삼기 위해 헨리 포드의 사진을 사무실에 걸어 놓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나라 손권의 횡포가 극에 달하자 나라의 원로 대장군인 육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때 육손은 무창에 주둔하면서 승상도 겸하고 있었다. 오나라 신하들은 무창에 있는 육손에게 심각한 사태임을 알리고 어떻게 손을 좀 써달라고 했다. 육손은 손권에게 간곡한 편지를 썼다. 원소와 유표의 예를 들면서 장자인 황태자를 중심으로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편지를 받고 손권은 오히려 진노했다. 어떻게 외지에 나가 있는 육손 장군이 궁정 내의 일을 자세히 알게 됐냐면서 진상 조사를 명했다. 옛날 같으면 육손의 말을 무겁게 들었는데 이젠 자신의 일에 간여한다고 화를 낸 것이다.

 이쯤 되면 손권은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손권은 육손조차 의심스러웠는지 모른다. 육손은 나라에 큰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인망도 높았다. 많은 사람이 육손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더욱이 육손은 죽은 손책의 사위인 데다 명문 집안 출신이고 세력도 대단했다. 의심이 많아진 손권으로서는 육손에 대해 견제 심리가 생겼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손권은 형 손책 이야기를 자주 하고 병이 나면 손책 사당에 가서 빌게 했다. 혹시 손책의 자손들에게 섭섭하게 해 손책이 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한다. 손책의 사위인 육손의 충언도 그대로 듣지 못하고 무슨 다른 속셈이 있다고 본 것이다. 조사 끝에 육손에게 편지를 보낸 태자관서의 책임자는 처형됐다. 또 관련자들도 줄줄이 처벌을 받거나 목숨을 잃었다. 그 중엔 전 승상 고옹의 손자도 있었다. 손권은 육손이 괘씸했지만 나라의 기둥인 그를 함부로 다룰 수는 없었다.

 육손이 몇 번이나 직접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했으나 그때마다 거절했다. 그 대신 손권은 몇 번이나 문책 사절을 보내 죄를 추궁했다. 육손은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앓다가 병석에 눕게 되고 그 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가 63세 때로 집안엔 남은 재산이 거의 없었다 한다. 나라의 기둥인 육손이 죽자 손권은 약간 후회했다. 육손의 인망이 높았던 터라 그를 추모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시의심이 남다른 손권은 육손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았다. 그래서 육손의 아들 육항(陸抗)을 불러 손패 파가 제기한 육손에 대한 20개조의 의혹 사항을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아들은 그 하나하나를 명쾌하게 해명했다. 그제야 손권은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한다. 아들이 육손의 작위를 이어받고 또 육손이 거느리던 병사 5,000명도 물려받았다. 손권이 육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것은 그로부터 6년이나 지나서였다. 육손의 아들인 육항이 병이 들어 건업에 올라왔는데 그때 손권이 눈물을 흘리면서 “지난날 나는 다른 사람의 참소를 믿고 그대 부친에게 정말 못할 짓을 했다.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내가 몇 번이나 육손 장군에게 보냈던 문책 문서는 모두 태워 다른 사람이 못 보게 하라”며 사과했다 한다.

 그 뒤로도 손권은 황태자 손화에 대해선 여전히 차갑게 대했다. 승상 육손이 죽고 나서 손패 지지파 인물이 승상을 이어받았다. 처음엔 황태자를 바꿀 생각으로 먼저 황태자 지지파부터 조정에서 쫓아냈으나 막상 죄 없는 황태자를 축출하기도 쉽지 않았다. 손권의 태도가 엉거주춤하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신하들이 두 파로 갈려 서로 시샘하고 심지어는 형제를 각기 다른 진영에 보내 위험을 분산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엉거주춤한 상태가 몇 년이나 계속됐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손권도 걱정을 한다. 어느 측근에게 “아들들이 화목하지 못하고 신하들은 파벌로 갈려 있다. 잘못하면 원소의 일족과 같은 말로를 맞게 돼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겠다. 두 사람 중 누가 돼도 큰 분란이 나겠다”면서 두 사람 다 바꿀 생각을 한다.

 손권이 늦게나마 제정신이 들었으나 스스로 만든 일인 줄은 잘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황태자 손화는 유폐됐다가 남양왕(南陽王)으로 강등돼 장사로 쫓겨나고 노왕 손패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후임 황태자로는 8세짜리 손량(孫亮)을 세웠다. 손권이 62세에 얻은 아들이다. 손권이 모처럼 결단을 내렸지만 너무 늦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손권은 7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후계자를 둘러싼 후유증 때문에 오나라엔 충신이 사라지고 기강이 문란해져 망국의 씨앗이 커졌던 것이다.

 정사(正史) 삼국지 저자 진수(陳壽)는 “손권은 몸을 낮춰 굴욕을 참고 재능 있는 자에게 일을 맡겨 큰일을 이뤄 낸 걸출한 인물이다. 강남을 차지해 삼국 정립의 한 축이 된 오나라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의심과 시기심이 많아 말년엔 신하를 많이 죽였다. 후계자 문제를 깨끗이 처리하지 못해 후손과 나라의 안전을 튼튼히 하는 덴 실패했다. 오나라가 얼마 안 가 멸망한 것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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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브스 정기구독 중 발췌 
前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최우석 지음.



 어딜 가든 감정과 이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건 어쩔 수 없는 도리다. 때문에 합리적 판단과 이성을 그르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부의 대물림에 대해서, 가족경영승계차원의 기업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기 때문에 다른 예를 들어보고자 하는데 전문경영인 체제하의 기업이라 하더라도, 창업자가 다수일 경우 CEO직을 다른 창업자에게, 혹은 회사와 함께해왔던 초기 인물에게 바톤을 넘긴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이 냉철한 판단하에 나온거라면 할 말이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위에 언급한 포드의 경우가 그래왔고, 최근엔 코크 인더스트리라는 회사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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